역사

미야케지마는 「역사의 섬」이라고 합니다. 현재에도 많은 전설과 신화가 남아있어, 그 역사는 오래되었고, 중세이전에 개방된 섬이라고 미야케지마 개도이야기 「미야케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미야케지마 명칭의 유래

미야케지마 명칭의 유래는 몇가지의 설이 있습니다. 섬의 형태를 집이 세채가 배열된 것 처럼 보인다고 미야케지마라고 한 「이에미쯔설(家三つ説)」, 시키나이샤(式内社)가 12사나 있는 것에서부터 궁(御宮)을 상징한 섬이름 「미야케지마(宮家島)」을 기원으로 하는 「시키나이샤설 (式内社説)」, 「남방해도지(南方海島志)」에도 기재된 것 처럼 화산분화가 많은 이유로 섬이름을 「오야케지마(御焼島)」를 기원으로하는 「오야케지마설 (御焼島説)」등 그 역사가 오래되어 문헌에 따라 설이 서로 달랐지만, 하나로 줄이지 못하여 미야케지마는 여러개의 명칭의 유래가 남게 되었습니다.

전설과 신화

미야케지마에는 신들을 주인공으로 한 여러개의 전설과 신화가 남아있어, 그 전설과 신화의 대부분은 「미야케기」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미야케기」의 저자가 승려와 수도승(山伏)으로 추측되어지는데, 신도(神道)를 배경으로 해서 신들을 주인공으로 한 많은 전설과 신화가 남겨져 있습니다.

미부노가(壬生家)

헤이안시대초기, 섬에 온 미부노씨는, 미지마대명신 (三島大明神)을 섬기는 대명신의 대관으로서 집단으로 섬에 들어와, 초대 미브노 미타치 (壬生御館)로부터 시작해, 그 이후 도지사・신관으로서 약 1,000년에 걸쳐 미야케지마의 제정을 통치해왔습니다.

분화의 역사

미야케지마는 오래전부터 이즈제도중에서 가장 분화가 많은 섬으로 유명합니다. 약 3,000년전에 대규모 분화가 일어난 흔적이 있어, 오야마정상의 카르테라는 이 대분화에 의해 생성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1085년(応徳二乙丑年)에 분화가 있었다고 「미부로 가계도(壬生家系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텐무(天武) 13년 (684년)부터 메이지 (明治) 7년까지 분화의 횟수를 13회였다는 설도 있으나, 나라・헤이안 (奈良・平安) 초기경의 기록이 없고, 실제로 분화한 횟수는 더욱 더 많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미야케지마의 신사

미야케지마에는 신의 명부에 기재되어 있는 것만도, 70사의 신사가 있습니다. 현존하면서도 기재되지 않은 곳을 포함하면 100사 이상의 신사가 있고, 그중에서도 분화에 관한 신사가 많아, 예전부터 도민은 자연재해를 신에게 기도하면서 극복해온 것을 잘 알수 있습니다. 시즈오카현 미시마시의 미시마다이샤 (三島大社)의 본궁인 도미가신사, 전설에도 등장하는 미시마대명신의 3명의 황후를 모시고 있는 오샤크신사 (御笏神社), 키사이 신사 (后神社), 니구우 신사(二宮神社) 등이 대표적인 신사로서 유명합 니다.

유배인의 섬으로서의 역사

미야케지마는 에도시대에는 이즈제도의 다른섬들과 같이, 죄인들을 섬으로 보내는 유배지로서 사용되었습니다. 그 수는 메이지시대 초기까지2,300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미야케지마의 유배인으로서는 화가인 하나부사잇쵸(英一蝶)와 도박사인 고가네이 고지로 (小金井 小次郎), 국학자인 다케노우치 시키부(竹内 式部), 종교인인 이노우에 마사가네(井上 正鐵), 가부키 연기자인 이쿠시마 신고로(生島 新五郎)등 역사상 유명인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에도시대 중기의 가부기의 인기연기자인 이쿠시마 신고로와 에도오오오쿠 (江戸大奥)의 하녀인 에시마(絵島)와의 밀회의혹을 발단으로 시작된 오오쿠의 권력투쟁이 에도를 휩쓸어, 1,000명이상의 처벌자가 나온 최대 스캔들로 발전한 「에시마・이쿠지마 사건」은 유명하고,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오오오쿠(大奥)」로서 2006년에 영화화되었습니다.